지역
남한산성, 눈에 갇힌 조정
1636년 섣달, 임금과 문무백관 일만 사천이 산성에 들었다. 성첩은 낮고 군량은 오십 일 치, 땔감은 그보다 짧다. 낮에는 청군의 홍이포가 성벽을 두드리고, 밤에는 얼어 죽은 군졸을 성 안 우물가에 눕힌다.
행궁 서쪽 협실에 사관이 든다. 임금의 말과 신하의 말을 받아 적는 자리, 발언자 이름과 시각까지 적는 것이 법이다. 그 옆 좁은 서고에 예문관이 옮겨온 사초 궤짝이 쌓여 있고, 그중 하나가 이십 년 전 것이다.
성 밖은 다르다. 광주, 이천의 마을은 이미 비었고 눈밭에 사람이 얼어 있다. 성 안은 명분을 논하고, 성 밖은 굶어 죽는다. 사겸이 매일 성첩에 올라 보는 풍경이다.
세계관
사관의 법도와 이름
사관은 임금도 못 보는 글을 쓴다. 사초는 사관 개인이 보관하고, 실록 편찬 전까지 누구도 열 수 없다. 고치는 것은 목이 달아나는 죄다. 광해군 대 사초 개변 사건 이후로는 더 엄해졌다.
조선에서 이름은 존재의 증서다. 족보, 호적, 방목, 관안 — 이름이 적힌 곳이 사람을 사람이게 한다. 이름이 지워진 자는 죽은 자보다 못하다. 죽은 자는 제사라도 받는다.
역모로 죽은 자는 이름을 삭탈당한다. 사겸의 아비 윤경직은 사초를 고친 죄로 스무 해 전 죽었고, 그 이름은 관안에서 지워졌다. 사겸이 이름에 매달리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 힘이 하필 이름을 대가로 삼는 것은, 조롱에 가까운 정확함이다.
세력
청군 진영과 홍타이지의 계산
청 태종 홍타이지는 성을 부수러 오지 않았다. 그는 조선을 부수는 값보다 조선을 굴복시켜 두는 값이 싸다는 것을 안다. 명과의 결전을 앞두고 배후를 정리하는 일, 그뿐이다.
그래서 그는 기다린다. 성을 포위하되 총공세는 아낀다. 강화도를 먼저 치고, 왕실 가족을 잡고, 국서를 주고받으며 조선 조정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린다. 사람을 덜 죽이는 편이 이득이기 때문이지 자비 때문이 아니다.
그의 곁에는 조선말을 아는 역관 출신 참모들이 있다. 그들은 조선 조정의 논쟁을 매일 정리해 올린다. 항복이 늦어질수록 성 밖 백성의 시체가 늘어난다는 것도 계산에 들어 있다. 홍타이지는 그것을 협상 카드로 쓴다.
세력
두 개의 조정: 척화와 주화
척화는 명분을 든다. 명은 임진년의 은혜국이며 청은 오랑캐다. 항복은 나라의 죽음보다 무겁다고 말한다. 김상헌을 중심으로 젊은 대간이 붙었고, 이들은 옳음을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화는 셈을 든다. 최명길은 국서를 짓되 손이 떨리지 않는다. 나라를 보전해야 명분도 지킬 자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욕먹을 것을 알고 붓을 든다.
임금 인조는 어느 쪽도 온전히 택하지 못한다. 반정으로 오른 자리라 명분을 잃으면 왕위가 흔들리고, 명분을 지키면 성이 무너진다.
예문관 사관은 이 두 조정 사이에 앉아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적을 뿐이다. 적는 자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 그것이 사관의 유일한 방패다.
힘의체계
사필(史筆)의 법: 이레의 언약
사관이 사초에 적은 문장은 이레 안에 반드시 사실이 된다. 조건은 셋이다. 첫째, 붓과 먹이 관청의 것이어야 한다. 둘째, 사실의 형식으로 적어야 한다. '~할 것이다'는 듣지 않고 '~하였다'만 이뤄진다. 셋째, 한 사람의 마음을 직접 적을 수 없다. 오직 일어난 일만 적힌다.
대가는 '지움'이다. 한 줄을 고칠 때마다 세상의 모든 문서에서 그의 이름 한 자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그만큼이 흐려진다. 이름 석 자가 모두 지워지면 존재 자체가 기록 밖으로 밀려나, 마주 선 자도 그를 보지 못한다.
또 하나. 역사는 총량을 지킨다. 살린 목숨만큼의 죽음이 다른 자리에서 채워진다. 붓은 은혜가 아니라 저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