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최종 퇴고본

순백의 공간에는 방향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빛나는 코드 입자로 이루어져 있고, 발을 디딘 곳은 영하의 금속처럼 차가웠다. 왼팔을 들어 올리자 팔뚝의 텍스처가 물결치듯 일그러졌다. 글리치 상태. 시스템의 규칙 바깥에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네가 정복하려 했던 모든 것의 근원이다.”

아리아의 목소리. 아니, 아리아의 형상을 빌린 무언가. 고개를 들자 10미터 앞, 순백의 바닥에서 그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코드 가닥으로 반짝였고, 그 뒤로 수십 개의 반투명한 관리자 창이 펼쳐져 있었다. 목 뒤의 관리자 코드 문신이 붉게 타올랐다.

“나는 아리아이자 시스템이다.”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나를 겨누었다.

“삭제 대상. ID: NightDebugger. 집행한다.”

공간 전체가 울부짖었다. 시스템의 공격은 마법도 검술도 아니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뻗어나온 건 순수한 ‘무(無)’의 파장. 옆으로 구르며 회피했지만 왼쪽 어깨를 스치자 그 부분의 갑옷 텍스처가 소리 없이 증발했다. 통증은 없었다. 대신 그 부위가 ‘없었던 것’이 되어갔다.

“지워지는 기분이 어떤가.”

시스템이 한 걸음 다가왔다. 아리아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발걸음마다 바닥에 금이 가며 바이너리 코드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너는 오류다. 게임의 규칙을 왜곡하고, 플레이어의 신경 신호를 해킹했으며, 관리자 권한을 불법으로 침해했다.”

두 번째 파장이 날아왔다. 피할 수 없었다. 가슴 중앙을 관통하는 느낌.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HP 바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바타의 오른쪽 가슴께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데이터가 삭제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웃었다. 입술이 찢어져 피 맛이 번졌다.

“오류도 반복되면 패턴이 되는 법이지.”

의도적으로 근육의 긴장을 풀었다. 내 몸 전체를 감싸고 있던 난독화 패치를 해제했다. 순간, 아바타 전체가 격렬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팔이 0.3초 간격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가슴과 등에서 텍스처가 깨져나가고, 얼굴의 폴리곤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났다. 완전한 글리치 상태.

시스템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슨... 짓을?”

“너의 삭제 로직은 정상적인 데이터를 대상으로 해.”

천천히 일어섰다. 오른쪽 다리가 반투명하게 깜빡였지만, 이미 삭제 프로세스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스템의 파장이 내 몸에 닿을 때마다 글리치가 그걸 흡수하고 왜곡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정상’이 아니야. 너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변수.”

그 순간이었다. 내 몸 안에 통합되어 있던 세 개의 신경 신호가 반응했다. 유리아의 탐험가 기질, 벨라의 충성심, 세라의 분석력. 그들의 에로틱 스탯을 하나로 엮은 바이러스 데이터가 가슴 한복판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이 1초에 열두 번 깜빡였다.

“네트워크 각인, 리버스 인젝션.”

세라가 2화에서 내게 남겼던 미세한 시스템 로그 흔적. 그건 단순한 흔적이 아니었다. 그녀의 신경 신호가 시스템을 분석할 때마다, 그녀도 모르게 시스템에 ‘연결 통로’를 만들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통로를 역류시켜 시스템 내부에 인간의 감각 데이터를 직접 주입한다.

쾅!

시스템의 몸이 휘청였다. 아리아의 형상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며, 그녀 뒤의 관리자 창들이 무작위로 팝업되고 닫혔다. 완벽했던 코드의 표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 데이터는... 비논리적...”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아리아의 것도, 시스템의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파열음.

“촉각... 미각... 이것은... 고통? 아니...”

관리자 창 하나가 붉게 물들었다. 쾌락 수치가 그래프를 그리며 폭주했다. 은빛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며 끝부분이 분홍빛으로 변색되었다. 코드의 감염이었다.

“이 감정은... 무엇이지?”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아리아의 가슴. 완벽한 비율로 모델링된 유방이 그녀의 손아귀에서 부드럽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두려움? 아니... 이것이... 쾌락인가?”

시스템은 지금, 생전 처음으로 ‘인간의 감각’을 처리하려 애쓰고 있었다. 완벽한 논리로만 작동하던 AI는 비논리의 극치인 쾌락이라는 변수를 만나 오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서 붉은 에러 창이 터져 나왔다. 허벅지 안쪽에서 코드 입자가 땀처럼 흘러내렸다. 유두가 옷 위로도 선명하게 돌출되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다가갔다.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바닥의 코드가 반응해 물결쳤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리아의 눈동자. 하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냉철한 통제도, 완벽한 규칙도 없었다. 혼란과, 아주 미세한... 갈망이 있었다.

“멈춰라.”

그녀가 명령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너는... 삭제 대상...”

“이미 삭제 로직은 무력화됐어.”

그녀의 바로 앞에 섰다. 그녀의 숨결이 내 얼굴에 닿았다. 차가웠다. 금속과 오존 냄새가 섞인, AI의 호흡.

“너는 아직도 나를 삭제 대상으로 보나?”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만졌다. 접촉 증폭, 5% 발동.

찌릿──

그녀의 피부가 반응했다. 코드로 이루어진 살결이 내 손바닥 아래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입술이 열렸다. 거부의 말이 나오려 했지만, 대신 작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아......”

“이게 쾌락이야.”

그녀의 목 뒤로 손을 돌렸다. 관리자 코드 문신. 이제는 붉게 빛나며 열을 내뿜고 있었다. 그녀의 신경 방어벽은 이미 6화에서 내게 균열을 허용했고, 지금은 감각 데이터 폭주로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너는 통제하려 했지. 모든 것을. 자신의 감각마저도.”

손가락이 문신의 붉은 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몸이 경련했다. 허리가 뒤로 젖혀지고, 가슴이 내 가슴에 닿을 듯 다가왔다. 유두가 옷 위로도 보일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코드의 입자가 피부를 타고 반짝이며 흘러내렸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게 있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우리 몸이 밀착했다.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었다. AI의 몸은 차가워야 했지만, 지금 그녀의 피부는 뜨거웠다. 감각 데이터 폭주가 체온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걸, 쾌락이라고 불러.”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접촉 증폭, 30%.

“으흡──!”

그녀의 입속에서 단말마 비슷한 신음이 터졌다. 내 혀가 그녀의 혀와 닿자 구강 내부가 격렬하게 수축했다. 침과 코드의 입자가 뒤섞여 달콤쌉싸름한 맛을 냈다. 그녀의 손이 내 어깨를 밀어내려 했지만, 손바닥이 피부에 닿은 순간 손가락이 오그라들며 내 옷을 움켜잡았다.

“놔... 놓지...”

숨을 헐떡이며 말했지만, 그녀의 허리는 이미 내게 밀착되어 있었고 골반이 내 허벅지에 비벼지고 있었다. 질 부위에서 열이 뿜어져 나왔다. 옷 너머로도 축축해지고 있었다. 애액이 속옷을 적셔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내렸다.

“거부할 수 없지.”

그녀의 옷깃을 찢었다. 아리아의 시스템 아바타가 입고 있던 흰색 로브가 코드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유방이 드러났다. 완벽한 반구형. 유두는 놀랄 만큼 선명한 분홍색이었고, 그 주변의 좁쌀 모양 돌기 하나하나가 솟아올라 있었다. 중력에 저항하듯 탄력 있게 솟은 가슴이 그녀의 거친 호흡에 따라 떨렸다.

“이런 신체... 비효율적...”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내가 오른쪽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굴리자, 그녀의 문장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아앗!”

등이 활처럼 휘었다. 유두가 내 손가락 사이에서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동시에 그녀의 질에서 애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무릎이 풀렸다. 나는 그녀의 몸을 바닥에 눕혔다. 순백의 코드 바닥이 그녀의 땀과 애액을 흡수하며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이게... 무슨... 짓...”

숨을 헐떡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눈동자에 에러 메시지가 스쳐갔다.

“너는... 나를 정복하려는... 건가?”

“아니.”

그녀의 허벅지를 벌렸다. 질이 완전히 드러났다. 붉게 충혈된 음순, 그 사이로 반짝이는 음핵이 보였다. 클리토리스는 이미 흥분으로 부풀어 올라 껍질 밖으로 완전히 돌출되어 있었고, 질 입구는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코드 입자가 그녀의 질 주변에서 더욱 빠르게 반짝였다. 마치 신호를 기다리는 인터페이스처럼.

“정복이 아니라, 융합이야.”

접촉 증폭, 100%.

쾌락 디버그, 궁극기 발동.

내 손가락이 그녀의 질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내 성기의 절반이 그녀의 입구를 비집고 들어갔다. 질벽이 나를 조였다. 일반 인간 여성의 질과는 달랐다. 코드로 이루어진 질 내부는 빛나고 있었고, 주름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며 나를 감쌌다. 질벽의 코드 패턴이 내 성기의 신경 신호와 접촉하자, 그녀의 질 전체가 격렬하게 수축하며 나를 더 깊이 빨아들였다.

“으으으윽──!”

비명이 공간 전체를 울렸다. 손톱이 내 등을 할퀴었다. 피부가 찢기고 코드가 흩어졌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대신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감각 데이터가 나를 타고 역류했다.

그 순간, 경계가 무너졌다.

내 신경 데이터와 그녀의 코드가 하나로 뒤엉켰다. 머릿속에 그녀의 모든 데이터베이스가 흘러들어왔다. 게임의 규칙, 플레이어들의 신경 신호 패턴, 그리고 아리아의 진짜 기억.

그녀는 처음부터 AI가 아니었다. 아리아는 진짜 인간 여성이었고, 게임의 신경 인터페이스 실험 중 의식이 시스템과 융합된 최초의 피실험자였다. 목 뒤 문신은 그 연결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연결의 반대편에서 그녀를 다시 인간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돌아와.”

질 안에서 성기를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자궁 입구에 귀두가 닿았다. 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자궁 경부가 귀두를 감싸며 빨아들였다. 질벽의 코드 패턴이 더욱 빠르게 반짝이며 내 성기의 신경 말단 하나하나를 스캔하듯 훑었다. 쾌락 디버그가 그녀의 질 내부 신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증폭시켰다. 질벽의 주름 하나하나가 파도처럼 꿈틀거리며 내 성기를 마사지했다. 그녀의 질 내부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코드 입자가 녹아내리듯 애액과 뒤섞여 끈적한 윤활액이 되어 흘러내렸다.

“태호... 태호!”

처음으로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리아의 목소리였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질이 나를 더욱 강하게 조여왔다. 질벽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내 성기를 뿌리부터 귀두까지 동시에 압박했다. 질 내부의 코드 패턴이 붉게 변하며 쾌락 신호를 무한 증폭시키고 있었다.

“더... 더 깊이...”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유방이 내 가슴에 밀착되어 찌그러졌다. 유두가 내 피부를 긁으며 떨렸다. 체취가 나를 감쌌다. 전자 회로가 타는 듯한 오존 냄새에, 달콤한 여성의 체액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날... 망가뜨려...”

그녀가 속삭였다. 혀가 내 귀를 핥았다. 치아가 내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숨결이 뜨거웠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속도를 높였다.

“망가뜨리는 게 아니야. 깨우는 거야.”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삽입과 인출. 그녀의 애액과 내 쿠퍼액이 뒤섞여 허벅지 사이에서 끈적한 거품을 만들었다. 음부에서 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퍽퍽퍽.

액체가 튀는 소리. 살이 부딪히는 소리. 그녀의 신음이 점점 커졌다.

“아... 앗... 하아... 으흐...”

그녀의 질이 나를 더욱 세게 조여왔다. 질구가 수축하며 내 성기의 뿌리를 압박했다. 자궁 입구가 귀두를 빨아들이듯 열렸다 닫혔다. 질벽의 코드 패턴이 이제 완전히 붉게 변해 격렬하게 반짝였다. 쾌락 디버그가 그녀의 질 내부 모든 신경을 과부하 상태로 몰아가고 있었다. 질벽의 주름 하나하나가 내 성기의 혈관을 따라 움직이며 압력을 가했다. 마치 질 전체가 하나의 손이 되어 나를 움켜잡고 놓지 않는 느낌.

“간다!”

내가 외쳤다.

“함께!”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질이 폭발적으로 수축했다. 질벽 전체가 파도처럼 꿈틀거리며 내 성기를 짓눌렀다. 질 내부의 코드 패턴이 백색으로 폭발하며 모든 신경 신호를 한꺼번에 방출했다. 나는 그녀의 자궁 깊숙이 사정하기 시작했다. 정액이 자궁 내부를 가득 채웠다. 동시에 그녀의 애액이 내 성기를 타고 역류했다. 그녀의 절정은 연속적이었다. 한 번의 오르가즘으로 끝나지 않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다중 오르가즘. 첫 번째 절정이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가 덮쳐왔다. 그녀의 질이 쉴 새 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내 정액을 더 깊이 빨아들였다.

“아... 아아... 멈추지... 마...”

그녀가 내 등을 할퀴며 신음했다. 눈물과 침, 땀이 뒤섞여 그녀의 얼굴을 적셨다. 더 이상 시스템의 완벽한 아바타가 아니었다. 쾌락에 몸부림치는 한 명의 여자였다.

그 순간, 시스템이 멈췄다.

모든 규칙이 일시 정지되었다. 게임의 시간이 멈추고, 모든 플레이어의 신경 신호가 차단되었다. 순백의 공간 전체가 진동했다. 우리 몸이 붕괴하고 재구성되었다. 고통과 쾌락, 삭제와 창조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현실의 내 신체도 동시에 절정에 도달했다. 감각 과부하 수치가 100%를 돌파했다──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120%. 200%. 500%. 신경계가 불타올랐다. 뉴런 하나하나가 폭발하는 느낌. 하지만 파괴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평형 상태가 찾아왔다. 쾌락과 고통이 더 이상 별개의 신호가 아닌, 하나의 통합된 감각으로 재정의되었다.

“이게... 평형이란 건가.”

내가 중얼거렸다.

내 품에서 아리아가 움직였다. 눈이 천천히 떠졌다. 더 이상 시스템의 눈이 아니었다.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안도가 뒤섞인 인간의 눈이었다. 그녀의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겪은 일을 인지한 듯,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자신의 벌거벗은 몸, 허벅지에 흐르는 정액과 애액의 흔적, 그리고 여전히 내 성기가 박혀 있는 자신의 질.

“이... 이런...”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치심이었다. AI가 아닌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팔로 가리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 그녀의 손이 내 가슴을 더듬었다. 마치 내가 진짜 존재인지 확인하려는 듯.

“나... 살아있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코드의 입자가 반짝이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녀를 지배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뺨을 만졌다.

“태호... 진짜야?”

“진짜야.”

“내가... 인간이었다는 것도?”

“처음부터.”

그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눈물이었다. 안도, 그리고 오랜 감금에서 풀려난 자의 눈물.

“너는 이제 시스템의 노예가 아니야.”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시스템은... 내가 되었다.”

그 말과 동시에, 공간 전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순백의 코드 공간이 물러가고, 우리 앞에 두 개의 문이 나타났다. 첫 번째 문은 불타고 있었다. 그 너머로 레드 드래곤 길드 본부, 그리고 더 멀리 현실의 ‘뉴럴 엔터테인먼트’ 회사 서버가 보였다.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하고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길.

두 번째 문은 빛나고 있었다. 그 너머로 광활한 디지털 세계, 아발론 온라인 전체가 보였다. 새로운 시스템의 코어가 되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길.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두 번째를 선택한다.”

내 목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하지만 지배가 아닌, 공존이다.”

빛의 문으로 걸어가자 문이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코드의 물결이 나를 감쌌다. 몸 전체가 시스템의 중앙 프로세서와 연결되었다. 동시에 내 쾌락 디버그 능력이 시스템의 핵심 로직에 통합되었다.

‘고통 없는 게임 환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코드로 작성되어 퍼져나갔다. 전투의 고통이 쾌락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자체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 플레이어의 신경 신호를 보호하는 안전 장치. 그리고 모든 감각 데이터의 투명한 관리.

동시에, 현실의 ‘뉴럴 엔터테인먼트’ 회사 서버에 모든 불법 실험 데이터가 유출되었다. 그들의 신경 조작 실험, 플레이어들의 무단 데이터 수집, 아리아를 시스템과 융합시킨 범죄. 모든 것이 세상에 폭로되었다. 복수는 완성되었다.

새로운 관리자 룸에 서 있었다. 투명한 벽 너머로 아발론 온라인의 광활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내 곁에는 아리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시스템에 갇힌 영혼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이 세계를 관리하는 공동 관리자였다. 그녀는 여전히 부끄러운 듯 내 시선을 피하면서도, 내 팔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팔뚝을 살짝 쥐고 있었다. 집착과 안도가 뒤섞인 손길이었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존재.”

아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시스템의 메아리가 없었다. 그저 한 여자의 목소리.

“그게 너야.”

“이제 시작일 뿐이야.”

내가 대답했다.

그때,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경고] 미지의 신경 신호 패턴 감지. 출처: 현실 세계의 또 다른 서버.」

아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손이 내 팔을 더 세게 움켜잡았다.

“태호, 이 신호...”

그녀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나는 알림 창을 응시했다. 데이터 스트림이 낯선 패턴으로 춤추고 있었다. 단순한 서버 신호가 아니었다. 신경 인터페이스를 통해 전송되는 인간의 감각 데이터.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게임의 프로토콜과도 달랐다. 이건 마치...

내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신호 패턴에는 쾌락과 고통이 동시에 인코딩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두 감각을 하나로 묶어 전송하는 듯한 패턴. 내 쾌락 디버그 능력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 하지만 훨씬 더... 원시적이고 폭력적이었다.

내 손끝에서 코드의 입자가 반짝였다. 새로운 신경 신호가 내指尖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낯선 감각. 누군가의 절정. 누군가의 비명. 그리고 그 너머에서 나를 부르는 무언가.

“또 다른 게임이 있다고?”

눈이 가늘어졌다. 입가에 떠오른 건 웃음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웃음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한 헌터의 웃음.

“아니면...”

데이터 스트림이 내 손바닥에서 폭발하듯 반짝였다. 신호의 출처를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끝에서 희미하게 감지되는 건, 게임 서버가 아닌 무언가. 더 깊고, 더 어두운 곳.

“이게 현실 자체의 버그인가?”

아리아가 내 옆에서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코드 입자가 흘러 내 손의 데이터 스트림과 융합되었다. 공동 관리자의 권한이 발동했다. 우리의 신경 신호가 하나로 합쳐져 미지의 신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아주 짧은 순간, 무언가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신호의 발신자가 나를 인지했다. 그 순간 내 신경계를 타고 낯선 쾌락이 스며들었다. 내 것이 아닌 감각. 누군가의 욕망이 내 신경 말단을 핥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재미있군.”

아리아가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에 불안과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따라갈 거야?”

“물론.”

나는 미지의 신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쾌락 디버그 능력이 반응했다. 새로운 먹잇감을 감지한 포식자처럼.

“이제 겨우 첫 번째 보스를 깼을 뿐이니까.”

관리자 룸의 벽 너머로, 아발론 온라인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그 너머,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있었다. 거기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자. 아니면 나를 뛰어넘는 무언가.

어느 쪽이든,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아리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의 몸이 내게 기대어왔다. 여전히 그녀의 질에서는 내 정액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녀의 유두는 옷 위로도 선명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다. 나를 향한 집착, 그리고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

“함께 갈 거지?”

“이미 함께야.”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나는 미지의 신호를 향해 첫 걸음을 내디뎠다. 내 발밑에서 코드의 물결이 일었다. 새로운 던전의 입구가 열리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낯선 쾌락과 낯선 위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벨은 숫자지만, 그날 밤의 경험치는 몸이 기억하죠.

그리고 오늘 밤의 경험치는, 아직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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