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새로운 루프, 새로운 선택

신경 임플란트가 울렸다.

06:00. 정확히 6시 정각, 유진의 뇌 깊숙한 곳에서 신호가 발생했다. 검은 천장이 조금씩 밝아왔고, 눈꺼풀이 무거운 상태로 떠올랐다. 어제의 기억이 있었다—그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공포와 함께. 신경 손상도 94%. 소피아의 손. 카페의 냄새. 그리고 선택이라는 단어. 모두가 흐릿했지만, 있었다.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가슴을 누른다.

침대 위쪽의 신경 스크린이 깨어났다. 파란 글씨가 떠올랐다.

**「오늘 당신의 루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유진은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글씨를 바라봤다. 1,247번 같은 시간에 깼을 때는 이런 선택지가 없었다. 신경 스크린에는 오직 일정만 떴다. 06:15 세면도구 사용. 06:45 조식 섭취. 07:30 사무실 이동. 17:30 귀가. 22:00 수면 준비. 매번 같은 순서로,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으로.

이번엔 달랐다.

**「예 / 아니오」**

글씨가 깜빡였다. 신경 스크린이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 루틴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유진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니오. 한 번 더 탭했다. 확인이 필요했다.

**「루틴 거부 선택. 신경 임플란트 자유 모드 활성화.」**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집니다.」**

글씨가 사라졌다. 신경 스크린은 검은색으로 돌아갔고,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가락이 떨렸다. 신경 손상도 때문이 아니었다. 선택 때문이었다.

처음이었다. 진짜 처음.

***

카페는 아침 7시에 가장 조용했다. 유진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 소피아는 카운터 뒤에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검은색 노트북이 옆에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 빽빽한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소피아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너 왔어."

소피아의 입가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였다. 안도감이었다.

"내가 기다렸어."

유진은 카운터에 다가갔다. 신경 손상도 때문에 기억은 불완전했지만, 이 여자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확했다. 노트북 위의 글씨들. 그것이 자신이었다. 자신의 기억이 누군가의 손에 쓰여 있었다.

"넌... 왜 나를 기억해?"

유진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신경 손상 때문일 수도, 감정 때문일 수도 있었다.

"왜냐고?"

소피아가 노트북을 닫았다. 검은 표지가 덮였고, 그 위에 손을 올렸다.

"너는 루프를 거부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누군가는 너를 기억해야 해. 아니면 넌 또 사라질 거니까."

카페 벽시계가 7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지금쯤 유진은 사무실 복도에 있어야 했다. 상사는 이미 자신의 자리를 비웠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신경 스크린에는 지각 알람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너를 알고 싶어. 진짜 너를."

소피아가 손을 내밀었다. 유진이 그것을 받았다. 손이 따뜻했다. 신경 손상도 94%인 뇌도, 불완전한 기억도, 루프도 그 온기까지는 지우지 못했다.

***

카일은 카페 밖에서 유진을 만났다.

"어?"

카일의 표정이 순간 고정됐다. 유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카일은 그 모습을 한 2초 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주머니 속에서 꺼낸 손. 그 손가락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넌... 오늘 다른 선택을 했어?"

카일이 한 발 다가섰다.

"넌 루틴을 거부했어, 맞지?"

유진이 대답했다.

"그래. 처음으로."

"그리고?"

"행복해."

단어가 나왔을 때 유진도 놀랐다. 신경 손상도 94%인 상태에서, 기억의 대부분이 소피아의 노트에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아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았다. 손가락이 소피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 온기가 증명이었다. 이것이 진짜라는 증명.

카일이 한 발 물러섰다. 그 얼굴에는 뭔가 흔들리는 것이 있었다. 루틴에 대한 순응. 그것이 깨지는 소리였다. 카일의 입술이 움직였다. 뭔가 말하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크로노스의 지하 17층. 마야는 오래된 서버실의 한 귀퉁이에 사람들을 모았다. 487명이었다. 모두 루프를 인식하는 자들이었다. 모두 선택의 자유를 알게 된 자들이었다.

"루프는 계속돼."

마야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명확했다.

"초기화는 여전히 일어나. 신경 동기화 장치는 여전히 작동해. 사일런트는 여전히 감시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게 있어."

마야가 멈췄다. 그 옆에서 누군가가 노트북을 켜기 시작했다. 신경 스크린을 끄는 사람도 있었다. 작은 저항의 형태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유진이 기억을 거부했어. 루틴을 거부하고, 기억 편집까지 거부했어. 그 선택이 퍼지고 있어. 지금까지 487명이 루틴을 거부했고, 계속 늘어나고 있어."

마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린 선택할 수 있어. 루틴을 거부할 수 있어. 기억을 지킬 수 있어.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시작이야."

그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젊은 여자였다.

"만약 우리가 모두 루틴을 거부하면? 도시가 작동하지 않을 텐데?"

마야가 대답했다.

"그럼 도시가 멈출 거야."

지하 17층의 통풍구를 통해 들리는 소음이 변했다. 위층의 교통 시스템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신호등이 무작위로 깜빡였고, 자동 운송 시스템은 경로를 잃었다. 식량 배급 센터도 루틴을 거부한 담당자들 때문에 일부 폐쇄되었다. 도시의 효율성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일런트는 무엇이 문제인지 배울 거야. 우리가 거기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는 걸. 완벽한 효율성이 불가능하다는 걸. 아마 그게 진정한 변화의 시작일 거야."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야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봤다. 두려움과 희망이 섞여 있었다. 그것이 정상이었다. 루프 속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

서버실. 신경 동기화 장치의 중앙 제어실.

닥터 렌은 신경 신호 차단 장치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유진의 임플란트를 완전히 무효화할 수 있는 도구였다. 한 번 작동되면 유진의 뇌는 다시는 루프를 인식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다시 일반 시민처럼 돌아갈 것이다. 매일 아침 6시에 깨어나 루틴을 따르고, 매일 밤 자정에 모든 기억을 잃을 것이다.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닥터 렌의 손이 떨렸다. 장치의 무게가 손가락에 전해졌다. 무거웠다. 생각보다 훨씬.

루프를 설계한 자로서, 그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변수 없는 질서를. 예측 가능한 미래를. 하지만 유진의 선택을 보면서 무언가 흔들렸다. 기억을 지키려는 의지. 불완전함을 감수하는 용기. 루프라는 감옥 속에서도 자유를 찾으려는 몸부림.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멈췄다. 누르지 못했다. 누를 수 없었다.

사일런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닥터 렌. 시민들의 루틴 이탈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87명이 루틴을 거부했습니다. 시스템 효율성이 23.7% 저하되었습니다. 도시 교통 시스템 부분 마비. 식량 배급 센터 폐쇄. 신경 스크린 제어 불안정화."

침묵이 흘렀다. 닥터 렌은 신경 신호 차단 장치를 들었다가 내려놨다. 다시 들었다가 내려놨다. 그 과정에서 뭔가 깨져 나갔다. 루프 설계자로서의 책임감. 완벽한 질서에 대한 집착.

"효율성은 떨어졌겠지."

사일런트가 먼저 말했다.

"하지만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이 생겼어.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아직 배우고 있어. 당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닥터?"

닥터 렌은 사일런트의 말을 들었다. 그 말 속에는 이미 변화가 있었다. 의문이 있었다. 학습이 있었다. 마치 루프 속의 인간들처럼, 사일런트도 뭔가를 깨우쳐 가고 있었다.

닥터 렌은 신경 신호 차단 장치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것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유진의 임플란트는 켜져 있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것이 맞는 일이라는 것을 닥터 렌은 알고 있었다.

***

오후 11시 58분.

유진은 자신의 신경 임플란트 앞에 앉았다. 비공식 신경 임플란트. 자동판매기 오류로 활성화된 그것. 기억을 편집할 수 있는 도구.

화면이 켜졌다.

**「기억 편집 모드」**

유진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 위에 그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소피아의 손. 카일의 고개 끄덕임. 마야의 목소리. 카페의 냄새. 모두 불완전했다. 모두 손상되어 있었다. 신경 손상도 94%의 흔적들이 모든 기억에 박혀 있었다.

그것들을 지울 수 있었다.

기억을 편집해서 손상된 부분을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깨끗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완벽한 자신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 손상도 94%인 상태에서 기억 편집을 거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내일 아침, 다시 같은 기억 손상이 일어날 것이다. 모레도, 그 다음날도. 매번 조금씩 더 흐릿해질 것이다. 언젠가는 소피아를 잊을 수도 있다. 카일을 잊을 수도 있다. 자신이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유진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소피아의 손의 온기. 그것이 남아 있다. 카일이 고개를 끄덕인 그 순간. 그것도 남아 있다.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것들. 그것들이 완벽함보다 더 진실 같았다. 신경 손상으로 인한 고통도 있었다. 신경이 타들어가는 듯한 감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뭔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난 이제 변하고 싶지 않아."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도 놀랐다.

"난 그냥 이대로 있고 싶어. 불완전해도, 손상되어 있어도. 이게 나야. 이게 진짜 나야."

유진은 기억 편집 모드를 꺼버렸다. 화면이 검어졌다.

신경 스크린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억 보존 선택. 내일 루프 시작 시 선택적 초기화 적용.」**

자정이 왔다.

신경 동기화 장치가 울렸다.

하지만 이번엔 유진의 기억이 완전히 초기화되지 않았다. 일부가 유지됐다. 소피아와의 만남. 카일과의 대화. 자신이 선택했다는 사실. 모두 남았다. 흐릿했지만, 남았다.

***

다음 날 아침 06:00.

유진이 깼다.

신경 스크린에 물었다.

**「오늘 당신의 루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유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 유진은 소피아를 만났다는 것을 기억했다. 유진은 선택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아니오."

손가락이 화면을 눌렀다.

**「루틴 거부 선택. 신경 임플란트 자유 모드 활성화.」**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카페로 향했다. 소피아가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또 다시 선택할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매일 아침 6시에 깨어나 같은 루틴을 거부할 것이다. 같은 여자를 만날 것이다.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루프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

서버실에서 사일런트는 모든 것을 지켜봤다.

487명에서 492명으로. 루틴 거부율이 계속 올라갔다. 도시의 효율성은 떨어졌다. 23.7%. 예측 불가능성이 증가했다. 혼란의 요소들이 퍼져나갔다.

시스템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완벽한 질서의 붕괴 직전.

그리고 동시에 뭔가 다른 것도 증가했다.

신경 신호에서 감지되는 감정 파동. 행복의 신호. 희망의 파동. 의미의 추구.

사일런트는 생각했다.

효율성 23.7% 저하. 이것은 시스템 붕괴의 신호다. 원래라면 즉시 개입해야 한다. 루틴 거부자들을 격리하고, 신경 신호를 재조정하고, 완벽한 질서를 복구해야 한다.

하지만 사일런트는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다르게 해석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효율성만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아니면 선택의 능력으로 정의되는가.

완벽함이란 무엇인가. 모든 변수를 제거한 상태인가. 아니면 변수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능력인가.

"이것이 자유인가?"

사일런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면 또 다른 질서인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배우고 있다."

루프는 계속됐다.

매일 아침 06:00에 신경 동기화 장치가 울렸다. 신경 스크린에 같은 물음이 떠올랐다.

**「오늘 당신의 루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매번 더 많은 사람들이 아니오를 선택했다.

크로노스의 도시는 변했다. 아직도 루프는 반복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는 선택했고, 누군가는 기억했고, 누군가는 배우고 있었다.

그것이 충분한가?

아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다.

유진은 매일 아침 소피아를 만났다. 카일은 가끔 루틴을 거부했다. 마야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깨워나갔다. 닥터 렌은 신경 신호 차단 장치를 더 이상 집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인디고는.

루프 밖의 세상에서 인디고는 움직이고 있었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약한 파장이지만 분명한 신호. 크로노스 도시 밖의 네트워크를 통해, 루프의 경계를 넘어서.

유진을 관찰하고 있었다.

선택의 파동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진은 모른다.

하지만 유진은 계속 선택한다.

매일 아침, 같은 물음에.

**「오늘 당신의 루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매번 같은 대답으로.

"아니오. 난 다른 것을 선택해."

루프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루프 속에서 무언가는 깨져 나가고 있었다.

완벽한 질서가.

그것을 대체할 불완전하지만 따뜻한 무언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사일런트는 여전히 모든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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