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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끝에 피어난 기적

백해인 · 당신의 선택이 결말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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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명의 붉은 선

응급실의 공기는 언제나 비정하리만큼 차갑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코끝을 찌르는 쇠 비린내와 시끄럽게 울려대는 바이탈 모니터의 비프음은 평소보다 훨씬 더 무겁게 고막을 때린다.

"환자 차트 나왔습니다! 20대 남성, 오토바이 전도 사고. 내원 당시 반혼수 상태에 혈압 75에 40, 맥박 142회. 복부 팽만이 심합니다!"

간호사의 긴박한 외침과 동시에 당신은 초음파 프로브를 환자의 우상복부에 밀착시켰다. 모니터 스크린에 어둡게 고인 혈액의 음영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복강 내 대량 출혈(Hemoperitoneum). 비장 파열 혹은 간 열상이 확실했다. 빠르게 줄어드는 환자의 생체 신호가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점멸한다. 0형 음성 혈액이 급속 주입기를 통해 들어서고 있지만, 깨진 독에 물 붓기다. 지금 당장 배를 열어 클램프로 출혈관을 잡지 않으면 환자는 30분 이내에 저혈량성 쇼크로 심정지를 맞이할 것이다.

"당장 수술동 연락해! 하이브리드 수술방 바로 열라고 해!"

당신의 외침에 전공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교수님, 그게…… 원무과와 기조실에서 하이브리드 수술방 사용을 통제했습니다. 오늘 오후 내원 예정인 이사회 VIP 의전용으로 무조건 비워두라는 지시가 내려왔답니다."

"무슨 소리야? 그 방은 하이브리드 응급 외상 전용이잖아!"

"이사회와 병원장 승인 없이는 그 어떤 초응급이라도 메스를 대지 말라는 경고가 내려왔습니다. 규칙을 어기면 면직 처리까지 불사하겠다고……."

정치적인 암투와 이권 다툼. 그 비열한 생리가 당신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옥죄어 온다. 병원 지도부의 권력 다툼 속에서, 이제 겨우 삶의 입구에 선 청년의 목숨이 한낱 장기판의 말처럼 버려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원칙을 어기고 수술을 강행했다간 당신의 외과의로서의 커리어는 오늘로 끝이 날 터였다. 하지만 이대로 절차를 밟기 위해 윗선을 설득하기엔 환자의 생체 시계가 너무도 빠르다.

"선생님! 환자 맥박 잡기 힘듭니다! 혈압 60 이하로 떨어집니다!"

마치 비명처럼 변해가는 모니터의 고주파 비프음이 응급실을 가득 채운다. 삐- 삐- 삐- 삐-.

환자의 차가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당신의 손끝에 닿았다. 메스를 쥐어야 하는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린다. 이 붉은 선을 넘을 것인가, 아니면 현실의 장벽 앞에서 멈출 것인가. 찰나의 시간 속에서, 당신은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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