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시작된 결혼식 첫날
머리를 짓누르는 지독한 화복(禍福)의 잔향인가. 짓눌린 숨통이 단숨에 트이며, 당신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뜬다. 숨결마다 가득 고이는 것은 화려하지만 지독하게 인위적인 최고급 침향의 냄새, 그리고 살결을 사정없이 옥죄는 혼례복 특유의 무게감이다.
고개를 숙이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참혹하리만치 아름다운 실버 화이트 톤의 샤를뢰즈 실크 드레스다. 어깨에서부터 물결치듯 흘러내려 침대 발치까지 드리워진 이 화려한 드레이프는, 숙련된 장인이 수천 개의 미세한 담수 진주와 가느다란 은사로 아라베스크 문양을 수놓은 명작이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다. 이것이 과거 자신을 대공가라는 이름의 화려한 감옥에 가두었던 우아한 사슬이었음을.
탁자 위에는 채 식지 않은 서양배 타르트와 시나몬, 정향을 넣어 끓인 붉은 하이포크라스 와인이 크리스탈 디켄터에서 매혹적인 빛을 뿜고 있다.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향이 코끝을 찔렀으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차디찬 냉소만이 차오른다.
"드디어 원하는 처지가 되었군, 아이리스."
나직하고 오만한 음성이 화려하게 장식된 대공비의 침실을 갈랐다. 문가에 기대어 서 있는 사내, 에드윈 플레르 대공. 칠흑 같은 흑발 아래로 달빛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당신을 미천한 존재 보듯 내려다보고 있다. 먼지 하나 없는 제복 차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태도에서 당신을 향한 극도의 혐오와 경멸이 뚝뚝 떨어진다.
회귀 전, 당신은 그의 이 눈빛 하나에 심장이 갈가리 찢겨 나가며 그가 내뱉는 가스라이팅의 고통 속에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너처럼 비천한 백작 영애가 대공비의 자리를 탐했으니, 이 냉대는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라던 그의 가혹한 속삭임을 축복처럼 여겼던 어리석은 나날들.
하지만 지금 당신의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오만함과 싸늘한 이성이 깃들어 있다. 당신은 천천히 침대 위로 수놓아진 실크 자락을 밀쳐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드레스 자락이 사락거리며 가느다란 마찰음을 내는 짧은 순간, 지독하리만치 냉랭하고 우아한 미소가 당신의 입술 끝에 매달린다.
"대공 각하." 당신은 목소리를 낮춘다. 분노도, 애원도 섞이지 않은 지독하게 나직하고 고결한 목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린다. "여전히 스스로가 온 세상의 중심이라도 되는 줄 아시는 모양이군요."
에드윈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진다. 가련하게 우는 모습을 예상했던 그의 푸른 눈동자에 낯선 당혹감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당신은 매끄러운 비단 자락을 움켜잡으며 그를 서늘하게 응시했다.
기적처럼 되돌아온 결혼식 첫날밤, 이제 이 화려한 족쇄를 부수고 당신만의 지배를 시작할 차례다. 당신은 에드윈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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