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상 은퇴 유망주, 10년 전 감독으로 눈뜨다
오른쪽 어깨를 고질적으로 짓누르던 끈적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다.
*슈욱!*
바람을 가르는 가뿐한 소리와 함께 당신은 눈을 번쩍 뜬다. 손에 쥐여져 있어야 할 낡은 글러브 대신, 차갑고 묵직한 알루미늄 재질의 마이크가 촉각을 자극한다. 눈앞을 메운 것은 사정없이 터지는 수십 개의 카메라 플래시 불빛이다.
*찰칵! 쩍! 찰칵!*
사방에서 터지는 마그네슘 광등의 파열음이 귓가를 때린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한다. 낯익지만 10년 전의 기억 속에나 존재하던 낡은 프레스룸. 백보드에는 붉은색과 감청색이 투박하게 뒤섞인 메이저리그 만년 꼴찌 구단, ‘러프라이더스’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당신은 자신의 매끄러운 손을 내려다본다. 수술 자국으로 가득했던 어깨는 멀쩡하고, 몸에는 현역 시절의 탄탄한 긴장감이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입고 있는 것은 선수의 유니폼이 아니다. 빳빳하게 풀이 죽은 단정한 정장, 그리고 가슴팍에 꽂힌 ‘신임 감독’이라는 명찰.
회귀다. 지독한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방출당하고 쓸쓸히 은퇴했던 만년 유망주가, 10년 전인 2014년으로 돌아와 메이저리그 최연소 감독의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이다.
“강 감독, 그냥 마이크 잡고 준비된 가이드라인대로만 읽어. 무리할 필요 없어.”
옆자리에 앉은 러프라이더스의 단장, 마크 앳킨스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낮게 속삭인다. 그의 입꼬리에 걸린 비즈니스용 미소 뒤에는 명백한 경멸이 숨겨져 있다.
러프라이더스의 지난 시즌 성적은 52승 110패, 팀 평균자책점 5.54, 팀 wRC+(조정 득점 생산력)는 리그 평균을 한참 밑도는 78에 불과했다. 프론트는 고액 연봉자들을 전부 트레이드 칩으로 처분해 연봉 총액(Pay roll)을 4천만 달러 수준으로 후려쳤다. 그들이 32세의 젊은 동양인 유망주 출신인 당신을 최연소 감독으로 앉힌 이유는 단 하나다. 언론의 포화를 대신 맞고, 시키는 대로 탱킹(Tanking) 노선을 밟아줄 다루기 쉬운 ‘바지사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미 프레스룸의 기자들은 하이에나처럼 펜을 굴리고 있다. 그들의 노트북 화면에는 이미 ‘러프라이더스, 통제하기 쉬운 청년 감독 임명으로 사실상 시즌 포기 선언’이라는 헤드라인이 쓰이고 있을 터다.
과거의 당신이라면 단장이 쥐여준 대본을 읽으며 타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메이저리그를 지배할 세이버메트릭스의 거대한 흐름, 트랙맨이 잡아낼 회전수(RPM)의 비밀, 그리고 발사각도 혁명의 데이터를 이미 머릿속에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쾅!*
프레스룸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몇몇 베테랑 선수들이 냉랭한 표정으로 들어서 벽에 기댄다.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얻자마자 구단으로부터 찬바람을 맞은 에이스 투수와 f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1.2를 기록하며 먹튀로 전락한 베테랑 타자다. 그들의 눈빛에는 패배주의와 신임 감독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차 있다.
단장 마크가 마이크를 당신 쪽으로 가볍게 밀어 넣는다.
“자, 감독님. 러프라이더스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한 말씀 해주시죠.”
철저히 통제된 패배를 바라는 프론트의 눈동자, 그리고 절망에 빠진 라커룸의 시선이 동시에 당신에게 꽂힌다. 당신의 입술이 마이크 앞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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