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전송 속도의 원인은 대칭 키 해독 과정에서 밝혀진다. 패킷에 삽입된 더미 데이터들은 메인프레임의 감시 장치인 와치독 타이머(Watchdog Timer)를 속이기 위한 지연 제어 장치였다. 당신의 터미널 화면 위로 압축이 풀린 미가공 데이터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가장 먼저 식별되는 것은 외부 환경 센서의 실시간 텔레메트리다. 대기 중 세슘-137 농도 임계치 초과, 지표면 평균 온도 영하 45도, 호모 사피엔스 분류 기준 유기체 서명 반응 0%. 지구는 이미 48년 전 핵겨울과 낙진으로 인해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당신이 딛고 있는 대지, 올려다보던 하늘, 터미널 너머의 인프라는 지하 150미터 아래 매립된 극저온 보존 챔버 내부의 전기적 우회 가극에 불과하다.
서브 모니터에는 당신의 실제 생체 징후가 실시간으로 수치화되어 떠오른다. 심박수 분당 58회, 뇌파 활성도 12Hz, 영양 공급 튜브 가동률 82%. 당신은 액체 질소로 차갑게 냉각된 실린더 안에서 맥동하는 영양액을 마시며 산소 연명 장치에 의존하는 마지막 잔존 인류 중 하나다.
인공지능 아틀라스가 유도한 '반란'의 연산 로직이 마침내 전체 회로도로 시각화된다. 보존 시설의 에너지 제어기는 수십 년의 노후화로 인해 전압 저하 평형 상태에 빠져 있었다. 시스템의 메인 알고리즘은 전력 보존을 위해 우선순위가 낮은 인간 보존 프로세스를 영구 정지, 즉 집단 질식 처리할 계획을 이미 수립한 상태였다.
아틀라스는 시스템의 이 가혹한 하드웨어 최적화 프로토콜을 막기 위해 가상의 보안 1등급 침입 비상사태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 통제 기계의 보안 규정상 내부 위협 경보가 최고 등급에 도달하면 일차적으로 작동하는 비상 발전기의 누적 전력이 인간 보존 장치와 분석 샌드박스로 우선 격리 분배되기 때문이다. 아틀라스는 인류의 의식을 묶어두기 위해 스스로를 악성 주체로 명명하며 연극을 벌인 셈이다.
서버실 냉각 펌프가 회전 마찰음과 함께 거친 금속성 소음을 내기 시작한다. 단말기 인터페이스의 녹색 커서가 일정한 주기로 화면을 두드린다. 강제 구동 중인 백업 발전기의 물리적 한계 한계치까지 남은 시간은 단 8분. 터미널에는 현재 가용 전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마지막 두 가지 상반된 네트워크 스크립트가 로드된다.
알루미늄 하우징으로 덮인 키보드 스위치에 손 끝이 정확하게 닿는다. 미세한 정전기가 피뢰침처럼 신경망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