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웅-!

대지를 울리는 거대한 진동. 심연의 수호자가 내뿜는 흑색 광선이 당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경고: 생명력이 위험 수준입니다.] [현재 체력: 10,000 / 1,500,000]

스치면 즉사. 말 그대로 단 한 대만 맞아도 영혼까지 분쇄될 위기.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렀을 상황이다.

하지만 10년 차 고인물인 당신에게 있어, 이것은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겨우 1만이나 남았잖아? 널널하네."

진짜 썩은물들에게 '피가 1만이나 남았다'는 건, 포션 하나 안 빨고도 보스를 세 번은 더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스윽.

당시의 신형 가상현실 햅틱 슈트도 감당하지 못할 초인적인 반사신경. 당신은 수호자가 휘두르는 거대한 대검의 궤적을 읽는다.

범위 판정은 단 0.1초. 무적 프레임(I-frame)을 이용한 회피 타이밍은 정확히 지금이다.

쉬이이익!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당신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소멸한다. 눈앞이 번쩍이는 찰나의 순간.

- 저스트 회피(Just Evade) 성공! - 치명타 버프 '심연의 복수'가 활성화됩니다. - 다음 타격의 대미지가 800% 증폭됩니다.

"패턴 파악 완료."

구석기 시대 물리엔진을 비웃는 버그급 연계 공격이 시작된다.

촤아아아악!

허공을 가르는 검기가 한 번, 두 번, 무려 일곱 번이나 겹쳐지며 수호자의 가슴팍에 직격한다. 원래대로라면 '아이템 복사 버그'를 써서 딜찍누를 해야 하는 난공불락의 보스.

그것을 오직 순수한 '컨트롤'과 '정공법'만으로 찢어발긴다.

시뻘건 피통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거대한 거신이 무릎을 꿇는다.

[SYSTEM: 던전 '잊혀진 깊은 심연' 최초 클리어!] ┌──────────────────────────────────────────────┐ │ [토벌 결산] │ ├──────────────────────────────────────────────┤ │ - 처치 대상: 심연의 수호자 (Lv.95) │ │ - 클리어 시간: 03분 12초 (월드 레코드) │ │ - 피격 횟수: 0회 (저스트 가드 42회) │ │ - 획득 보상: [심연의 패왕 반지 (Legendary)] │ └──────────────────────────────────────────────┘

말도 안 되는 수치.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고인물의 업적이다.

멀리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유리엘은 턱이 빠질 기세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말도 안 돼... 저걸 버그도 안 쓰고 손가락으로만 잡았다고...?"

그녀의 눈동자가 경외감으로 격렬히 흔들린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은 바람을 타고 아카데미 전체로 퍼져나갔다. F급 낙제생 서지한이 숨겨진 '세계관 최강자급' 고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인공지능 시뮬레이터를 완벽하게 터트려버린 괴물. 아카데미 교수진조차 지한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 침묵을 지켰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무대 밑바닥의 엑스트라가 아니다. 공식적으로 아카데미의 판도를 뒤흔들 강력한 패자가 되었다.

어디선가 묵직한 운명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원작의 대재앙이 서서히 태동하는 이때.

완벽하게 각성한 당신의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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