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실기 시험장 서쪽 구석, F클래스 대기실의 낡은 나무 옷장 앞.
당신은 심호흡을 합니다.
이곳은 개발진이 대충 만든 맵의 경계선. 물리 엔진이 꼬이기로 유명한 최적화 실패의 성지입니다.
"왕년에 프롬뇌 좀 굴리고 스피드런 좀 해본 놈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스윽.
당신은 캐릭터의 어깨를 옷장 모서리에 45도 각도로 밀착시킵니다. 그리고 좌우로 미친 듯이 어깨를 흔들며 전진 키와 앉기 키를 연타합니다.
이른바 '프레임 드랍을 이용한 벽 뚫기(Out of Bounds)' 버그.
스으으윽— 툭!
시야가 일순간 암전되며, 당신의 몸이 현실의 물리 법칙을 비웃듯 벽면 너머로 쑥 빠져나갑니다.
[시스템: 공간의 틈새 '더미 데이터 룸'에 진입하셨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텍스처조차 제대로 입혀지지 않은 회색빛 허공. 그리고 그 한가운데,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정체불명의 빛덩이가 보입니다.
당신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잡습니다.
[시스템: 미구현 히든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 아이템 정보 | 상세 내용 | | :--- | :--- | | **이름** | 공허의 파편 (성장형) | | **등급** | ?? (측정 불가) | | **효과** | - 장착 시 마력 회복 속도 +300%<br>- 주변의 숨겨진 차원 균열 및 히든 피스 감지<br>- [미완성] 마력을 주입하여 형태 변화 가능 | | **한줄평** | 유저들 몰래 가챠 수수료 떼먹으려다 까먹은 개발사의 실수. |
"와, 똥망겜 물리 엔진 수준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건 단순한 사기 아이템이 아닙니다. 아직 정식 패치로 풀리지 않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리얼 '치트 키'입니다. 이 녀석만 있으면 낙제생 탈출은 물론이고 이 세계의 대가리를 깨부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스스슥—
그때, 더미 데이터 공간 너머 현실 세계의 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스칩니다. 시험장 외곽 덤불 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은밀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이 시간에 일반 학생이 올 리 없는 외진 곳. 당신은 벽 틈새의 미세한 균열을 통해 바깥을 내다봅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은발의 고고한 실루엣이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올해 아카데미의 수석 입학생이자, 원작의 메인 히로인 '유리엘 프라이드'. 그녀 역시 무언가 비밀스러운 볼일이 있는 듯 삼엄하게 주위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의 손에 쥔 '공허의 파편'이 미친 듯이 공명하며 지하 암반층을 가리킵니다. 이 시험장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된 초대형 히든 던전의 기운을 완벽하게 감지한 것입니다.
지금 바로 파편의 마력을 개방한다면, 시험장 아래의 봉인을 강제로 열어젖혀 판을 흔들 수 있습니다. 혹은, 저기 홀로 서 있는 유리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대박을 노릴 수도 있겠지요.
당신의 눈동자가 빠르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자, 고인물의 품격을 보여줄 선택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