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손가락 끝이 아직도 타들어 가는 듯 얼얼하다. 칩슛을 가까스로 쳐내며 위기를 넘겼지만, 이어진 혼전 상황에서 수비수가 다급하게 태클을 시도하다 파울을 범하고 말았다. 아크 정면 부근, 골문과의 거리 단 21미터. 직접 슈팅이 가능한 치명적인 데드볼(Dead ball) 상황이다.

당신 앞의 수비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허벅지에 가득 찬 젖산으로 인해 가뿐 숨을 몰아쉬는 센터백들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골키퍼의 시야를 확보하고 슈팅 궤적을 1차적으로 차단해야 하는 5인조 수비벽(Wall). 하지만 체력이 고갈된 그들이 카운터 프리킥 순간에 타이밍에 맞춰 정교하게 점프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벽의 높이가 낮아지면, 키커가 프리킥을 가볍게 감아 차서 수비벽 머리 위를 넘기는 '디핑 슛(Dipping shot)'의 성공 확률이 극도로 치솟는다.

"정렬해! 오른쪽 한 걸음 더! 틈 벌리지 마!"

당신은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며 포스트와 수비벽의 정렬 상태를 조정한다. 일반적으로 오른발잡이 키커를 상대할 때, 골키퍼는 수비벽으로 골문 오른쪽(키커 기준 왼쪽) 약 60%를 가리고, 남은 40%의 공간을 자신이 직접 책임지는 수비 포지셔닝을 취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수비수들의 반응 속도로는 벽 사이로 미세하게 꺾여 들어오는 궤적의 볼을 몸으로 막아내기 어렵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당신은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시스템 제어창을 호출한다. 키커의 발목 각도, 디딤발의 위치, 바람의 영향까지 데이터화하여 최적의 방어 경로를 도출하려던 찰나였다.

*치직, 치지직.*

눈앞을 메우던 반투명한 푸른빛 궤적들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이내 시스템 창에 붉은색 노이즈가 폭발하듯 번지더니, 거짓말처럼 암전된다.

[알림: 시스템의 일시적 과부하로 인해 제어창이 강제 종료됩니다. 재부팅까지 남은 시간 180초.]

이정표가 사라졌다. 예측 경로도, 상대 키커의 슈팅 확률 데이터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전장. 오직 당신의 시각과 청각, 그리고 심장 박동 소리만이 초록색 잔디 위를 무겁게 짓누른다.

상대 키커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뒤로 다섯 걸음, 왼쪽으로 두 걸음 물러선다. 오른발 안쪽으로 공을 강하게 감아 차 골문 구석을 찌르겠다는 노골적인 디딤 자세다. 하지만 이는 반대쪽 포스트를 노리는 강력한 킥이나, 수비벽이 점프하는 타이밍을 노려 그 아래로 굴려 차는 땅볼 슈팅을 은폐하기 위한 페이크일 수도 있다.

삐익—!

침묵을 깨고 주심의 휘슬 소리가 날카롭게 스타디움을 가른다. 5만 관중의 함성이 일시에 잦아들며 팽팽한 긴장감이 필드 위에 내려앉는다. 키커가 거친 스텝으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디딤발이 잔디를 파고들며 공의 뒤편으로 오른발이 강하게 호를 그리며 날아든다.

찰나의 선택이 승패를 가른다. 당신의 신체 세포들이 일제히 요동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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