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산(下山)의 서막
삼십 년의 세월은 장천(長天)을 흘러가는 무심한 구름과 같았다. 낙엽이 지고 서리가 내리기를 서른 번, 당신이 머물던 동굴 앞의 계곡물은 하릴없이 흐르고 또 흘렀으나, 가슴속에 응어리진 붉은 원한만큼은 차마 얼어붙지 못했다. 귀를 찢는 비명과 불길에 휩싸여 무너지던 가문의 전경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여, 눈을 감을 때마다 붉은 혈시(血矢)가 되어 당신의 심장을 꿰뚫곤 했다.
단전(丹田)의 심처에서 요동치는 겁천정화(劫天精華)의 기운은 이제 차가운 밤하늘을 수놓는 명월(明月)처럼 고요하고도 지극히 맑게 정제되어 있다. 삼십 년 전, 멸문의 지옥 속에서 기적처럼 거두었던 복수의 기연. 뼈를 깎고 골수를 바꾸는 환골탈태의 고통을 고독으로 삼키며 영면하듯 수련해 온 힘이 마침내 당신의 기혈을 온전히 채웠다. 바람조차 머물지 못하던 험준한 산세를 내려오는 당신의 도포 자락에는 오직 차디찬 살기(殺氣)만이 서려 있을 뿐이다.
황량한 산길을 지나 드디어 당도한 평택(平澤)의 밤거리는 속세의 번잡함과 탁한 한숨으로 가득 차 있다. 낯선 인가의 불빛과 소음 속에서, 당신은 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에 몸을 감춘다.
오른편, 화려한 홍등(紅燈)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은은한 비파 소리를 흘려보내는 기루(妓樓)가 보인다.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가득한 저곳은 강호의 온갖 기밀과 소문이 모여드는 거대한 정보의 소용돌이. 가문을 몰락시킨 불공대천의 원수, '무극신종(無極神宗)'의 은밀한 동향이 저 달콤한 향기 속에 숨겨져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반면 왼편, 가로등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 끝에는 먹구름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기와집이 길을 막아서고 있다. 철검방(鐵劍坊) 분타. 무극신종의 하부 조직이자, 과거 당신의 일족을 사냥할 때 가장 앞장서서 칼춤을 추었던 자들의 거처다. 담장 너머로 느껴지는 삼엄한 기운과 거친 숨소리는 삼십 년 전 그날의 피비린내를 여전히 풍기고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잠자던 복수의 불꽃이 겁천정화의 진기와 공명하며 뜨겁게 요동친다.
적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기루로 스며들어 철저한 정보를 쥐고 숨통을 조일 것인가. 아니면 이 밤, 철검방의 붉은 피로 백무린의 귀환을 천하에 공표할 것인가.
당신의 손끝이 허리춤에 매달린 낡은 검자루에 조용히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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