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형광등이 눈꺼풀을 태웠다.

도현은 응급센터 처치실 간이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심장이 아직도 제 박자를 찾지 못하고 두어 박자씩 걸음을 놓쳤다. 명치에 눌어붙은 불덩이는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고, 심장을 감싸던 압박도 물러가지 않았다. 남의 통증이었다. 위암 환자 김성호의 것, 심장 눌림증 여자의 것. 두 사람의 병이 그의 몸속에서 아직 세를 부리고 있었다.

'진통제는 안 듣는다. 오직 시간이야.'

시간을 벌 겨를이 없었다. 벽에 걸린 스피커가 찢어질 듯 울었다.

"코드블루, 3구역! 심정지 환자 입감, 삼십 대 남자, CPR 진행 중—!"

도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아직도 모르는 이 손을, 그는 주먹으로 꾹 쥐어 떨림을 눌렀다. 링거 바늘을 뽑고 침대에서 내려서자 세계가 반 뼘쯤 기울었다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환자분, 누워 계셔야—"

간호사의 손을 지나쳐 그는 3구역 커튼을 젖혔다.

이동식 침대 위에 남자가 눕혀져 있었다. 청록색 작업복, 안전화 한 짝이 벗겨진 채. 가슴 위에서 레지던트 하나가 리듬을 세며 압박을 넣고 있었다. 도현은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상황은 알았다. 모니터의 파형은 무의미하게 흔들렸고, 목의 경정맥이 밧줄처럼 부풀어 있었다.

"삼십 초 후 리듬 체크! 에피 한 방 더 들어갔고—"

3년차 정민아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아침에 도현에게 눈총을 주었던 그 얼굴이었다. 그녀가 도현을 알아보고 미간을 좁혔다.

"인턴이 여기 왜 있어. 나가."

"환자 좀 볼게요."

"뭐?"

도현은 대답 대신 침대 옆으로 파고들었다. 압박이 이어지는 사이, 그는 환자의 손목을 잡았다. 맥이 아니라 피부를 잡았다. 맨손이 남자의 팔뚝에 닿는 순간—

세계가 접혔다.

숨이 막혔다. 가슴 정중앙이 안쪽으로 짓눌리는 감각. 심장이 뛰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 심장을 무언가가 사방에서 죄어들었다. 물주머니. 심장을 감싼 심낭 안에 피가 고여, 뛰려는 심장을 밖에서 눌러 죽이고 있었다. 압박은 소용없었다. 이 심장에 필요한 건 흉부 압박이 아니라, 심장을 목 조르는 그 피를 빼내는 것이었다.

'외상성…… 심장압전. 흉골 뒤, 심낭에 삼출.'

도현은 눈을 떴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거 심장압전이에요."

정민아가 압박 리듬을 세다 말고 그를 노려봤다.

"뭐라고?"

"심낭에 피가 찼어요. 압박 아무리 해도 심장이 안 펴집니다. 심낭천자 해야 돼요. 지금."

"인턴이 진단을 해?"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이 환자 건설현장에서 사다리에서 떨어졌어. 흉부 외상. CT부터야. 여기서 바늘 함부로 찔렀다가 심장 뚫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CT 찍을 시간에 죽어요."

"물러서, 인턴!"

"경정맥 부었잖아요!" 도현의 목소리가 커튼 밖으로 튀어 나갔다. "심음 멀어지고 혈압 안 잡히죠. 벡의 삼징이에요. 사다리에서 떨어졌으면 심장 타박, 심낭 열상—외상성 심장압전 딱입니다. 지금 초음파 대보세요. 검상돌기 밑."

정민아의 손이 압박을 멈췄다. 아주 잠깐. 그녀도 벡의 삼징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인턴 첫날 아침의 애송이가 그것을 짚어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에프에이에스티 준비." 그녀가 이를 악물며 초음파기를 끌어왔다. "만약 아니면, 넌 오늘로 끝이야."

프로브가 젤을 밟고 검상돌기 아래에 닿았다. 화면에 회색 안개가 떴다. 그 안개 속에서, 도현이 봤던 그대로였다. 심장을 둥글게 에워싼 검은 띠. 뛰려고 안간힘을 쓰는 심장 주위로 두껍게 고인 심낭 삼출액.

처치실이 반 박자 멎었다.

"……심낭에 삼출." 초음파를 잡은 인턴이 속삭이듯 읽었다. "액체…… 많아요."

정민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그녀가 도현을 홱 돌아봤다. 아까와 눈빛이 달랐다.

"천자 세트, 18게이지, 지금! 초음파 유도!"

"제가 하겠—"

"인턴 손 대지 마." 그녀가 못 박았다. "내가 한다."

도현은 물러섰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가 손대는 것보다, 정민아가 하는 편이 절차 안에서 안전했다. 이빨을 숨긴다는 건 이런 것이었다. 전생의 그는 이 순간에 자기가 바늘을 잡겠다고 우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집이 그를 죽였다.

정민아의 손이 검상돌기 아래 45도로 바늘을 밀어 넣었다. 초음파 화면 위로 바늘 끝이 어둠 속을 파고들었다. 주사기의 검은 실린더로 붉은 액체가 왈칵 밀려 들어왔다.

"들어온다. 혈성 삼출."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삼십…… 오십 시시…… 빼는 중—"

모니터가 반응했다.

무의미하게 흔들리던 파형이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뾰족한 봉우리 하나. 또 하나. 심장을 조르던 피가 빠지자, 눌려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리듬 돌아온다!" 인턴이 외쳤다. "맥 잡혀요! 경동맥 촉지!"

"혈압…… 팔십에 오십. 올라와요!"

커튼 안에 갇혀 있던 숨이 한꺼번에 터졌다. 압박을 하던 레지던트가 두 손을 떼고 자기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정민아는 주사기를 든 채로 도현을 올려다봤다. 그 눈에는 아까의 짜증이 없었다. 오직 하나, 얇게 갈라진 의심의 틈이 있었다. 저 인턴이, 대체 어떻게.

"너…… 어떻게 알았어. CT도 안 찍고."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서 통증이 세를 늘리고 있었다. 명치의 불, 첫 여자의 심장 압박, 그리고 방금 이 남자에게서 옮겨 온 흉골 뒤의 압착까지. 세 겹의 통증이 그의 흉강 안에서 겹쳐지며 어느 것이 누구의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심장이 또 박자를 건너뛰었다. 하나, 둘. 세 박자째에는 아예 멈춘 듯 조용했다가 뒤늦게 발작적으로 뛰었다.

시야 가장자리가 검게 오그라들었다.

도현은 커튼 기둥을 잡았다. 손끝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떨렸다. 잡은 손이 미끄러졌다. 다리가 접히려는 걸 억지로 버텼다.

"이봐, 인턴. 괜찮아?"

낯선 목소리였다. 낮고, 느긋한데, 끝이 예리한. 산소통을 밀고 온 남자였다. 마취과 명찰. 도현은 그 얼굴을 흐릿하게 알아봤다. 쓰러지기 직전 눈이 마주쳤던 그 남자. 강민석이라는 이름표.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강민석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도현의 얼굴이 아니라, 손에 못 박혀 있었다. "너 방금."

"뭐요."

"손 떨었어." 강민석이 나직이 말했다. 주위의 소음 속에서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크기로. "그것도 규칙적으로. 잔떨림이 아니야. 그리고 지금 네 입술 색—"

그가 도현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도현은 반사적으로 손을 뺐다. 남에게 손목을 잡히는 건, 상대의 병을 앓게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강민석은 그 회피를 다르게 읽었다.

"부정맥 있어? 심전도 찍은 적 있어?"

"없어요."

"거짓말." 강민석의 눈이 좁아졌다. "너 방금 리듬이 심하게 불규칙했어. 나 마취과야. 사람 맥 놓치는 순간을 밥 먹듯이 본다고. 인턴 첫날에 심장압전을 CT도 없이 촉진으로 잡아내는 놈이, 자기 심장이 튀는 건 모른다고?"

도현은 대답 대신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겨우 리듬을 되찾는 중이었다. 이 남자를 지금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관심 감사한데, 저 환자부터 이송—"

"서도현."

명찰을 읽은 강민석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기억해 둘게. 너 지금 뭔가 감추고 있어. 그리고 그게 네 몸을 갉아먹고 있고." 강민석이 산소통 손잡이를 다시 쥐었다. "나중에 그게 뭔지 얘기하고 싶어지면 마취과로 와. 진통제로 안 되는 통증이면 특히."

'진통제로 안 되는 통증.'

정확히, 도현의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문장이었다. 이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핵심을 밟았다. 전생에도 이 강민석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회귀가 세부를 어긋내고 있었다.

도현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커튼이 거칠게 젖혀졌다.

"누구야."

목소리의 주인은 흰 가운의 중년 남자였다. 응급의학과 지도의. 정민아가 자세를 고쳐 섰다. 지도의의 시선이 도현에게 꽂혔다.

"자네가 진단 내렸다고?"

"네."

"인턴이." 그가 한 음절씩 씹었다. "이 병원 몇 시간째지, 자네. 반나절도 안 됐잖아. 그런 자네가 외상 환자한테 CT도 없이 심장압전이라고 확진하고, 3년차한테 천자를 시켰다?"

"결과는 맞았습니다. 환자 살았—"

"결과 얘기 하는 게 아니야."

지도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화를 낼 필요도 없다는 듯한 무게였다. 그게 더 위험했다.

"만약 자네가 틀렸으면? 외상 환자한테 근거 없이 심낭에 바늘 찔러서 관상동맥 찢었으면, 그 책임 자네가 져? 인턴이? 못 지지. 3년차가 지고, 내가 지고, 이 센터가 진다. 자네가 뭘 봤든, 그건 자네 머릿속에만 있어. 초음파 소견은 정 선생이 확인한 거고. 자네 손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나는 봤다. 나는 그 심장을 내 가슴으로 앓았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는 미친 인턴이 되고, 이 능력은 웃음거리가 된다. 전생의 그는 이 자리에서 소리쳤다. 내가 옳다고. 그리고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증명할 수 없는 확신은, 시스템 안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이 건은 인시던트로 올린다." 지도의가 돌아서며 말했다. "인턴이 지시 체계 무시하고 처치에 개입한 걸로. 지도전문의랑 면담 잡아. 자네 오늘 운 좋았던 거야. 다음엔 그 운으로 사람 죽어."

커튼이 닫혔다.

정민아가 도현을 스치며 낮게 중얼거렸다. 비아냥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환자는 네 덕에 살았어. 근데 넌 이제 찍혔고. 이 바닥이 그래."

그녀마저 나가자, 처치실 한 켠에 도현만 남았다. 살려낸 환자는 중환자실로 올라갔고, 그가 손에 쥔 건 징계 면담 하나였다. 손끝은 아직 떨렸다. 심장은 아직도 이따금 걸음을 놓쳤다. 살렸는데,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똑같아. 전생이랑.'

옳은 진단이 옳다는 이유만으로는 아무 힘이 없다는 것. 그가 15년에 걸쳐 뼈에 새긴 교훈을, 회귀 첫날에 다시 확인받고 있었다.

그때, 커튼 밖에서 구두 소리가 다가왔다. 또각, 또각. 급하지 않은데 망설임도 없는 걸음. 커튼이 살짝 열리고, 목에 프레스카드를 건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쓰러지기 직전, 자동문으로 들어오던 그 기자였다.

"서도현 선생님?" 그녀가 명찰을 확인했다. "인턴 첫날에 사고 크게 치셨네요."

"기자는 여기 못 들어옵니다."

"방금 밖에서 다 들었어요. 지도의가 인시던트 올린다는 것까지." 그녀가 커튼을 완전히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도현의 떨리는 손을, 흰 입술을, 식은땀을 훑는 눈매가 예리했다. "3년차가 놓친 심장압전을, 반나절 된 인턴이 촉진만으로 잡아냈다. 환자는 살았고, 상은커녕 징계를 받게 됐고. 재밌는 그림이죠."

"기삿거리 찾으시면 다른 데서—"

"저 이서린이에요."

그녀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도현의 눈이 그 이름 위에 멎었다. 전생에서 침묵당했던, 카르텔의 은폐를 파헤치다 매장당한 그 이름. 지금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도현 앞에 서 있었다.

"저는 병원이 뭘 감추는지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 당신한테 관심이 생겼거든요." 그녀가 명함을 흔들었다. 손끝이 도현의 떨리는 손 바로 앞까지 왔다. "그래서 하나만 물을게요. 아까 그 진단."

이서린의 눈이 도현의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당신, 그거 증명할 수 있어요?"

도현의 심장이, 또 한 박자를 건너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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