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검증." 강민석이 통보서를 내려놓지 못했다. 종이 끝이 그의 손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이 새끼들이 널 죽이려고 판을 깐 거야."
"압니다."
"안다고? 알면서 그 얼굴이야? 서도현, 넌 지금 심전도 모니터를 뗀 지 하루도 안 됐어. 손끝 아직 떨리잖아. 이 상태로 심사위원 앞에서 손을 짚으라고? 짚으면 쓰러지고, 안 짚으면 진단 못 해. 어느 쪽이든 넌 나가."
도현은 통보서 맨 아래 두 개의 도장을 다시 봤다. 윤재경. 박태오. 그 위에 얹은 손바닥이 서늘했다. 종이는 아무것도 앓지 않았지만, 그는 이 종이 뒤에 무엇이 이어져 있는지 알았다.
"선생님." 도현이 통보서를 접었다. "저들은 제가 검증에서 무너질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당연하지. 함정이니까."
"그러니까 그 확신이 우리 편입니다."
강민석의 눈썹이 움찔했다. 도현은 접은 통보서를 가운 안주머니에 넣었다. 3년 전 심낭 압전 남자의 진료기록 사본이 든 그 주머니였다.
"윤재경은 다음 주 내내 저를 검증장으로 볼 거예요. 심사위원회 전체가 제 손끝만 노려보겠죠. 그 시간에—" 도현이 강민석을 똑바로 봤다. "12층 서버가 비워집니다. 정기점검. 같은 주. 이게 우연일 리 없어요. 저를 무대에 세워놓고, 뒤에서 로그를 지우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넌 지금, 저들이 지우기 전에 먼저 그걸 손에 넣겠다는 거지."
"검증 전에요." 도현이 낮게 말했다. "검증장은 제가 무너지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확보한 증거를 꺼내는 자리가 됩니다."
강민석이 한참 도현을 노려보다가, 관자놀이를 눌렀다.
"미친 새끼. 이걸 기회라고 부르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
이서린은 병원에서 두 블록 떨어진 24시간 카페의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복 차림에, 노트북을 펼치고, 손도 안 댄 커피가 식어 있었다. 도현과 강민석이 들어서자 그녀는 화면을 반사적으로 돌렸다.
"검증 통보 받았다면서요." 인사도 없었다. "정민아 인시던트 기록이 12층으로 올라간 다음 날. 예상보다 빨랐네."
"그걸 어떻게—"
"내가 3년을 이 병원 뒤를 판 사람이에요. 정보가 어디서 새는지는 알아요." 이서린이 노트북을 도현 쪽으로 밀었다. "그보다, 당신 얼굴 보니 이미 무슨 짓을 벌일지 결정하고 온 것 같은데."
도현은 앉았다. 강민석이 그 옆에 팔짱을 끼고 섰다.
"서버 점검일이 검증일과 같은 주입니다." 도현이 말했다. "점검 중엔 시스템이 안전 모드로 돌아요. 접근 감사 로그가 실시간이 아니라 배치로 밀립니다. 몇 시간의 사각이 생겨요."
이서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12층 서버는 카드키 없이 못 들어가요. 과장급 권한. 당신은 인턴이고."
"권한은 필요 없어요. 물리적 접근만 있으면. 점검 중엔 유지보수 단자가 열립니다." 강민석이 끼어들었다. "마취과에 의공학팀 후배가 하나 있어. 점검 스케줄이랑 층별 잠금 해제 순서를 안다고. 그날 12층 방재 셔터가 언제 몇 분간 열리는지도."
이서린이 두 남자를 번갈아 봤다. 그녀의 손가락이 노트북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당신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목소리가 낮아졌다. "적발되면 인턴 하나 잘리는 걸로 안 끝나요. 마취과 전문의 면허, 나… 나야 잃을 게 이미 없지만." 잠깐 말이 끊겼다. "이건 무단 침입에 정보통신망법 위반이에요."
"압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렇게 쉽게 안다고 하지 마요." 이서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당신 3화에서 나한테 진단 하나 증명 못 했잖아. 확신만 있고 증거는 없었어.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직 모르는 얼굴이야."
도현은 그 말을 삼켰다. 아팠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전생에, 그는 옳았고, 그래서 죽었다.
"그래서 손에 넣으려는 겁니다. 증거를." 도현이 그녀를 마주 봤다. "당신이 3년 전에 못 넣어서 침묵당한 그거요."
이서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몇 초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아요." 마침내 그녀가 노트북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점검일. 시간. 셔터. 전부 다시 정리해요. 한 번밖에 못 하니까."
*
점검일 밤, 12층 복도는 비상등만 켜져 있었다.
방재 셔터가 스르륵 올라간 것은 강민석의 후배가 알려준 시각 정확히 그때였다. 강민석은 유지보수 인부 조끼를 걸치고 앞장섰고, 도현과 이서린은 그 뒤를 따랐다. 심사위원회 서버실의 문은 유지보수 모드에서 물리 단자를 통해 열렸다. 강민석의 손끝이 단자 커버를 벗기는 동안, 도현의 심장이 박자를 놓쳤다.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엔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들어가." 강민석이 속삭였다. "나는 복도 지킨다. 셔터 다시 내려오기까지 이십이 분."
서버실 안은 서늘했고, 팬 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 이서린이 유지보수 단자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화면에 아카이브 디렉터리가 펼쳐졌다.
"삭제 이력 로그… 여기." 그녀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차트 수정 원본. 누가, 언제, 무엇을 지웠는지. 이게 종이 서류랑 다른 거예요. 종이는 '결과'만 있어. 이건 '행위'가 남아 있어."
도현은 화면을 노려봤다. 파일 하나가 열렸다. 그리고 그의 숨이 멎었다.
세 개의 이름. 세 개의 사망 통계. 수술 실패로 사망한 환자 셋이, 응급의학과 심근경색 급사로 재분류되어 있었다. 흉부외과 통계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재분류된 실패의 책임이 몰린 담당의 이름 칸에—
*서도현.*
전생의 그였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그러나 이미 준비된 그의 죽음. 회귀 전 그를 매장한 조작 데이터의 원본이, 지금 그의 눈앞에 있었다. 손끝이 화면 위에서 떨렸다.
"이거야." 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게… 나를 죽인 거예요."
이서린이 그를 돌아봤다. 무슨 말인지 묻고 싶은 눈이었지만, 그녀는 묻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스크롤했다.
"수정자 서명 로그… 박태오. 삭제 승인… 윤재경." 그녀가 멈췄다. "잠깐."
그녀의 손가락이 다른 폴더로 옮겨갔다. 3년 전 날짜. 문서번호 23-EM-0416.
"이거… 이거 내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3년 전, 스물아홉 청년. 심근경색 급사로 처리됐던 그 케이스. 나 이거 취재하다 데스크에서 잘렸어요. 심초음파를 안 찍었다는 게 이상하다고, 진짜 사인이 뭐냐고 묻다가—소스가 끊기고, 기사는 킬됐고." 그녀가 두 케이스를 나란히 띄웠다. "봐요. 삭제 방식. 서명 라인. 재분류 코드. 전부 똑같아.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아요."
같은 손. 같은 구조. 같은 은폐.
"3년 전 그 청년도, 이 세 명도, 그리고—" 이서린이 도현을 봤다. "당신 이름이 왜 여기 있는 거예요?"
도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회귀했다고, 이건 내가 죽고 돌아온 미래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만 화면 속 자기 이름을 응시했다.
"나중에요." 그가 겨우 말했다. "지금은 뽑는 게 먼저예요."
이서린이 외장 드라이브를 꽂았다. 복사 막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갑자기 손을 멈추고, 도현을 정면으로 봤다.
"서도현."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3년 전에 나는 혼자였어요. 소스가 나 하나뿐이었고, 데스크가 접으라니까 접혔고, 나는 그 청년 유족한테 아무것도 못 돌려줬어. 3년을 그거 하나 붙들고 살았어요." 복사 막대가 절반을 넘었다. "이번엔 안 그럴 거예요. 이건 취재가 아니에요. 나 이거 세상에 꺼낼 거야. 침묵당하지 않아. 다시는."
도현이 그녀를 봤다. 3화에서 명함을 던지며 '증명하라'던 회의적인 기자는 없었다. 이건 동맹이었다. 완전한.
"함께 갑시다." 도현이 말했다.
복사 완료. 이서린이 드라이브를 뽑아 가슴 안쪽에 넣었다.
*
셔터가 다시 내려오기 육 분 전, 세 사람은 12층을 빠져나왔다.
강민석이 유지보수 조끼를 벗어 던지며 숨을 내쉬었다. "됐어? 됐지?"
"됐어요." 이서린이 드라이브를 톡톡 두드렸다.
도현은 그 순간에도 안도하지 못했다. 무언가가 걸렸다. 서버실 화면 오른쪽 위, 접근 세션이 열리던 그 짧은 순간에 깜빡이던 표시. 점검 모드에서 로그는 배치로 밀린다고 했다. 하지만 '실시간 감시'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었다. 그리고 박태오는 서버 접근 권한을 가진 자였다.
*
새벽 세 시, 박태오의 휴대폰이 울렸다.
시스템 알림이었다. 점검 배치 로그가 밀려 올라오면서, 그 안에 섞인 비정상 세션 하나가 그의 눈에 걸렸다. 삭제 이력 폴더. 3년 전 케이스. 그리고 세 명의 통계 파일. 열람됨. 복사됨.
박태오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손이 식었다. 그는 접근 세션의 물리 단자 위치를 확인했다. 12층. 점검 시간. 인부 조끼.
"이 새끼."
그는 알았다. 누군지. 며칠 전 창고에서 마주친 그 인턴의 눈이 떠올랐다. 호기심 많으면 오래 못 버틴다고 경고했었다. 경고로 안 됐다.
그는 이불을 걷어차고 옷을 챙겨 입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접니다. …네, 이 시간에 죄송합니다. 서버에 접근 흔적이 있습니다. 세 명 통계 원본이랑 3년 전 그 건까지. …아뇨, 종이만 있을 때랑 다릅니다. 로그를 가져갔어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정리하겠습니다. 서버 쪽 원본은 제가 마무리하고—인턴은요."
전화 너머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박태오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게 낫겠네요. 자르는 걸로는 안 됩니다. 그놈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순간 뭐든 짓밟는 놈이에요. 그러니까—" 그가 창밖 병원 방향을 봤다. "그 확신을, 그놈이 스스로 무너지는 데 쓰게 만들죠. 검증장에서요."
*
이틀 뒤 아침, 응급센터 스테이션.
도현은 회복 중이었다. 드라이브는 이서린이 안전한 곳에 옮겼고, 검증장까지는 나흘. 손 떨림은 가라앉았지만 흉강의 잔류 통증이 아직 남았다.
박태오가 스테이션 카운터에 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은 창고에서와도, 통보서를 건넬 때와도 달랐다. 웃고 있었다.
"검증 케이스 배정 나왔다, 서 선생." 박태오가 봉투를 손끝으로 툭 밀었다. "심사위원회에서 직접 골랐어. 공정하게."
도현이 봉투를 열었다. 환자 정보가 든 파일이었다. 이름, 나이, 주호소. 그리고 첨부된 영상 자료와 검사 결과—
도현의 눈이 그 위를 훑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증상이 모순됐다. 촉진으로 짚어도 병변이 한 곳에 모이지 않는 케이스. 여러 질환이 동시에 걸쳐 있어, 손으로 앓아 봐야 '어느 통증이 진짜 원인인지' 구별이 불가능한 환자. 능력을 써도 답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능력을 쓰면—중증 접촉이 겹쳐 심장이 값을 치른다.
짚으면 무너지고, 짚어도 답이 없다.
"어때." 박태오가 카운터에 팔꿈치를 얹고 몸을 기울였다. 목소리가 도현에게만 닿게 낮았다. "네가 그렇게 자신 있어 하는 손. 심사위원 스무 명 앞에서 한번 보자고. 짚어봐. 확신에 차서. 늘 하던 대로."
도현은 파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넌 못 참을 거야." 박태오가 속삭였다. "환자가 눈앞에 있으면, 넌 절차고 뭐고 손부터 대는 놈이니까. 그리고 짚는 순간, 스무 명이 볼 거다. 근거도 없이 확신하는 오만한 손을." 그가 몸을 세웠다. "검증장에서, 네가 스스로 오만을 증명하게 만들어주지."
박태오가 돌아섰다. 구두 소리가 멀어졌다.
도현은 파일을 쥔 채 서 있었다.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